첫 글을 무엇부터 시작할까 굉장히 고민을 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왜 다른 나라로 와서 살고싶다 생각했을까로 시작할까 한다.
사실 나는 한국에서 나름 괜찮은(평범한) 성장 배경에 직장을 가지고 있었다. 인문계 고등학교, 서울 사립 4년제 대학 그리고 대기업에 버금가는 중견 기업 취직. 다만 한 가지 나는 내 학력에 비해 정말 좋은 조건의 회사에 취직을 했었다. 먼저 가장 좋았던 점은 연봉이였는데 직접적인 연봉을 말할 수는 없지만 3개월치 수습급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1년차 삼성 무선사 성과급여를 합친 연봉보다 내 연봉이 더 많았고 2년차에는 회사가 분사되는 바람에 오히려 더 받을 수 있었다. 돈을 이렇게 많이 주면 일을 많이 했어야 했냐하면 야근이 한달에 손에 꼽을 정도로 업무강도는 평범했다. 요즘 세대 말로 월급루팡일정도로 내가 하는 일에 비해 돈을 많이 받았었다.
그럼 왜 그만 두고 이 먼 타국으로 와야만 했을까. 이상한 얘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첫째로 급여가 내게 너무 과분했다. 나는 그정도 능력이 안 되는데 거기에 내 눈높이는 이미 맞춰져 있었고 때마침 들어갔던 회사는 드라마틱한 성장을 이루는 과정의 끝자락에 서있었다.(물론 더 성장할 수도 있다.) 10년 이후에 이 회사에 있는 내 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였고 그렇게 될 내 모습이 너무 싫었다. 그럼 이직을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다음에 얘기할 단점때문에 다른 회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서 다른 회사로 이직에 대한 생각은 접게 되었다.
그리고 조직 체계에 대한 불만이 너무 많았다. 내가 있던 컴퓨터학부의 학풍은 너무나도 자유스러웠고 공기업에 뿌리를 둔 회사는 너무나도 딱딱하고 따분했다. 아이디어를 내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새로운 프로젝트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 또는 해당 프로젝트를 맡은 사람이 혼자 야근을 해서라도 맡아야 했으니 회사의 성장을 이끌어갈 프로젝트가 서로 다른 사람에게 미루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자주 연출되었다. 당연히 그 프로젝트가 제대로 진행되는게 신기할 정도로 새로운 프로젝트의 미래는 불보듯 뻔했다. 또한, 개개인의 연봉을 많이 주다보니 인력 채용에 대해 굉장히 보수적이었다. 두 사람이 할 일을 한 사람이 하고 이는 자연스레 백업 인력의 부족으로 이어졌다. 이러다보니 한 사람의 휴가 또는 공백이 굉장히 크게 되었고 또한, 한 가지 업무가 아닌 문어발 식으로 여러가지 업무를 하다보니 크고 작은 사고가 많게 되었다. 이 외에도 굉장히 많은데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된다는 말처럼 내가 그만 두게 되었다.
또한, Java를 개발한 James Gosling 그리고 Linux, Git을 개발한 Linus Torvalds와 같은 거장을 해외 그것도 북미 본토에 있으면 자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또한, Google이나 MS의 경우 한국 지사에서는 정말 소수만을 선발하는데 여기에서는 본진이니 내가 이런 큰 기업에서 일 할 수도 있다는 희망감에 해외로 오게 되었다. 사실 최근에는 이민 때문에 이 부분에 소홀히 하고 있는데 다시 맘을 다잡을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촌놈이였던 나는 서울 생활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고향으로 내려갈 방법들을 생각해봤는데 너무 택도 없는 연봉차이로 도저히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특히 지하철 출퇴근의 경우 내가 정말 진저리날 정도로 싫어했던 만원 지하철. 아직도 저 생각하면 진심으로 돌아가고 싶지않다.
아직 6개월차 캐나다 새내기이지만 직장도 내가 좋아하는 한적한 도시에 잘 자리 잡았고 이민도 현재 착실히 진행 중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막바지에 있는 중이다. 누군가는 캐나다를 지루한 천국이라고 하는데 내게는 그냥 천국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딱히 화려한 생활을 꿈꾸지 않는 히키코모리 성향을 가진 내게는 정말 안성맞춤인 천국인 셈. 첫 글이라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 얘기하다보니 횡설수설한 감은 있지만 다음 번에는 이민에 대해, 내가 속했던 과거 회사에 대해 그리고 현재 회사에 대해 얘기해보자고 한다.
그럼 오늘의 데일리 외노자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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